원경왕후 형제들의 죽음
tvN과 TVING을 통해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원경"의 인기가 대단한 가운데
극 중 태종이 경계심을 높이고 있는 원경왕후의 외척
민 씨 일가를 언제 어떻게 쳐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원경왕후는
여흥 민 씨 민제의 딸로
1365년(고려 공민왕 14년)에 태어나
18세인 1382년(고려 우왕 8년) 2살 아래인 이방원과 혼인해
남편 이방원이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 개입해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이방원에게 무기와 갑옷을 내어서 도왔기 때문에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는 내용이
각종 기록에 담겨있습니다
정도전, 남은 등이
여러 왕자들을 제거하려는 모의를 꾸몄기 때문에 일어난
1차 왕자의 난 때에는
변란의 낌새를 알아챈 민씨가 자신의 병을 핑계로
남편 이방원을 궁궐 밖으로 불러내고
방간, 방석이 거느린 시위패가 해산되어 약해진 상황에서
동생 민무구, 민무질과 함께 병장기를 준비해
군사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돕고 무기를 준비함으로써
이방원 세력의 승리로 이끄는 동력을 제공했고
두 번째 왕자의 난 때도
동복형인 방간과의 싸움에서
머뭇거리는 남편에게 직접 갑옷을 꺼내 입혀주며 독려해
결국 이방원이 조선 세 번째 왕으로 즉위하며
왕비로 책봉되었습니다
그렇게
원경왕후가 왕비의 지위에 오르며
왕실의 외척이 된 민 씨 일가에
민무구, 민무질, 민무휼, 민무회 등 네 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태종 이방원이 왕위에 오른 후
왕권 확립을 위해 외척과 공신 세력을 숙청하려고
두 차례의 옥사를 일으켜
네 명 모두 자결로써 죽임을 당했는데
그 첫 번째는
1406년(태종 6년)에 태종이
세자 양녕대군에게 왕위를 넘겨주겠다고 선언했을 때
민무구, 민무질 형제가 기뻐하다가
태종이 이를 철회하자 안 좋은 표정을 보였다며 논란이 된 후
세자에게 기대어 국가를 장악하려 했고
다른 왕자들을 제거하려 했다는 소문이 발단이 되어
권력 남용과 불충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다가
결국 1407년(태종 7년)
제주도로 유배를 보내 숙청하였고
민무휼, 민무회 형제는
태종 초기 권력 기반 형성에 협조하였으나
민무회의 권력욕과 행동이 태종의 뜻과 어긋나게 되고
염치용의 노비소송 판결이 부당하다는 내용을
충녕대군에게 말한 것을 충녕대군이 태종에게 말하며 발단이 되어
탄핵으로 불거지게 된 와중에
양녕대군이 민 씨 가문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민무회가 반발했고
이를 민무휼이 은폐하려고 했다는 것까지 알려지며
탄핵이 빗발치자
태종이 민무회, 민무휼 형제를 유배지로 보내고
자결을 강요하여 사망하게 함으로써
원경왕후는 네 형제를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