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9일
오늘도 산길은 편치 않을 것 같아
4일 전 송강누리길 탐방 중 찾지 못해 지나쳤던
"송강문학관"과 "송강 공릉천공원"을 찾아보기 위해
송강누리길을 다시 나섰습니다
출발지인 필리핀참전비에서 공릉천 용연돌다리를 건너고
메타세쿼이어 둑길로 플랜테이션 입구까지 가서
입구에 서있는
"송강 정철"에 대한 낡은 안내판부터 확인한 후
안내판을 따라 송강누리길의 좌우 주변을 살피며 가던 중
호국로 길 건너 공릉천변에서
송강 정철의 강아, 문학, 자연에 대한 사랑의 약속을 모티브로
전통 정자와 약속의 벽, 시비석, 잔디마당 등 다양하게 꾸민
"송강 공릉천 이야기공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12개의 암석 시비로 만든 송강의 작품들을
외우지 못해 선생님께 혼났던 학창 시절을 추억하며
머릿속에 꼼꼼하게 새겼습니다
신원 원주 되어 되롱 삿갓 메고 쓰고
가랑비 비낀 바람에 낚싯대를 비끼 들고
흰 마름 붉은 여뀌 핀 물가에 왔다갔다 하노라.
부인네 가는 길을 사내가 돌아 가듯
사내가 가는 길을 문인에 비켜 가듯
제 남편 제 아내 아니거든 이름 묻지 말진져-
팔목을 쥐시며는 두 손으로 받으리라
출입을 하시며는 지팡 들고 따르리라
연회가 다 끝나시면 뫼셔 가려 하노라
어버이 살아실때 섬길일은 다하여라
돌아가신 후에 애통한들 무엇하리
평생에 다시 못 할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당신 아들 효경 읽더니 얼마나 배웟는가
내 아들 소학책은 모래면 마치겠네
어느 때 이 두 채 배워 어진 사람 되려나
남으로 생긴 중에 벗같이 유신 하랴
나의 그른 일을 다 일러 주는구나
이몸에 벗님 곧 없으면 사람됨이 쉬울까
신원 원주 되어 되롱 삿갓 메고 쓰고
가랑비 비낀 바람에 낚싯대를 비끼 들고
흰 마름 붉은 여뀌 핀 물가에 왔다갔다 하노라.
누리길에서 벗어나 발길이 많지 않은 곳의 작은 공원임에도
난방시설까지 갖춘 화장실을
놀랍도록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음에 감동하며
한컷 한컷 정성으로 담았습니다
송강 정철의 문학이야기 공원에서 도로를 건너
마을길 3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송강문학관을 찾았지만
절로 바뀐 듯 '봉덕사'라는 간판이 붙어있었고
마을 전체를 살펴보려 뒷산으로 올라가다
봉덕사 뒤에 '의기 강아 묘'라 쓰인 비석이 있는 묘가 있어
알아보니
송강을 무척 사모하던 '진옥'이라는 기생이
송강이 유배된 곳을 찾다가 왜란을 만나
소서행장을 유혹해 아군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공을 세운 후
순결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비구니가 되어 입산수도하다
송강의 묘소가 있던 이곳에 와서 생을 마감했다는
미담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있다 하고
50대 송강이 20대 초반의 진옥과 만나며 지은 시조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답니다
산길을 조금 더 들어가
당시 안악군수였던 송강의 셋째 형인 정황의 묘와
그 뒤에 정황의 딸로 선조의 후궁인 정귀인의 묘가 있었는데
종 1품이라는 귀인의 신분에 의해
딸을 아버지보다 더 높은 곳에 안장했나? 짐작했습니다
송강 정철은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절정을 만들어낸 문학 시인으로
문학사에서 뿐 아니라 당대 정치사에서도
선명성을 강조하였던 서인의 영수로
우의정, 영의정과 전라도체찰사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1536년(중종 31년)에 태어나
사화, 당쟁이 이어지는 어지러운 시기에
파직, 사직과 유배를 반복하는 삶을 사시면서
관직 진출 전인 1560년에 '성산별곡'을 지으시고
1561년 26세로 진사시 1등과
이듬해 문과 별시에 장원급제하며 관직에 진출하시어
31세부터 함경도암행어사, 전라도암행어사를 지내시다가
35세 때 부친상에 이어 38세 때 모친상을 당하여
고양군 신원에서 각각 2년에 걸쳐 시묘살이를 하셨고
1580년(선조 13년)부터 강원도관찰사로 재직하며
'관동별곡'과 '훈민가' 16수를 지어
시조와 가사문학의 대가로서의 재질을 발휘하셨습니다
그 후로
전라도관찰사, 도승지, 예조참판, 함경도관찰사를 거쳐
1584년(선조 17년) 대사헌이 됐으나
동인의 탄핵을 받아 1585년 사직하고
고향인 창평으로 내려가 4년간 은거생활하며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같은
가사와 시조, 한시 등 많은 작품을 지으셨습니다
54세인 1589년(선조 22년) 정여립의 모반사건 때
우의정으로 발탁되어 서인의 영수로서 동인들을 추방하고
이듬해 좌의정에 올라 인성부원군에 봉해졌으나
1593년(선조 26년) 왕세자 책봉문제로 유배되었다가
임진왜란으로 다시 복귀했으나 동인의 모함으로 사직하고
강화 송정촌에 우거 하다 58세로 별세하셨습니다
작품으로는
위에 열거한 4편의 가사와
시조는.'송강별집추록유사' 권 2에
'주문답' 3수, '훈민가' 16수, '단가잡편' 32수, '성은가' 2수,
'속전지연가' 1수, '서하당벽오가' 1수, "장진주사' 등
107수가 전해지고
저서로는
시문집인 '송강집'과 시가 작품집인 '송강가사'가
있습니다
(자료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송강공릉천공원 - 네이버 지도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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