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4일
오늘도
10,000보 걷기는 멈출 수 없고
먼지 없이 맑은 날씨도 그냥 지나칠 수 없기에
익숙해진 루틴인 듯 자동적으로 집을 나와
전날보다 차가워진 공기를 이겨내기 위해 산길로 향했습니다
높지는 않지만
건자산 초입 급경사 산길로 정상에 오르며 몸을 데우고
능선길을 따라가다 등산로가 아닌 곳에
누군가가 지나간 것 같아 보이는 흔적을 발견하며
궁금증이 생겨 쫓아 가다가 범상치 않은 묘를 발견했는데
고려 말부터 조선 초 문신인
성억 선생 묘소였습니다
산을 내려가는 길이었고
범상치는 않지만 어떤 분의 묘소인지 몰라
묘역 맨 위에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맨 아래 입구 가까운 곳에 모셔진 성억선생묘의
비갈과 안내판을 읽고서야
고려 말에 태어나신 성억선생과 그의 후손인 창녕 성씨
묘역임을 알았습니다
성억선생(1386년~1448년)은
조선 태종의 넷째 아들인 성령대군의 장인으로
1414년 딸이 성령대군에게 출가하여 경녕옹주로 봉해지자
군자시부정. 대호군을 거쳐
1416년 동부대언.좌군사지총제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태종이 끔찍히 사랑한 성녕대군이
1418년 홍역으로 14세에 요절하자 세종에게 부탁하기를
성억 선생의 일족을 공신의 예로 대우하게 하여
성씨 일문은 조선 명가의 위치를 굳히게 됩니다
1421년(세종 3년) 집현전부제학
1422년 전라도 도관찰사. 공조참판
1427년 우군도총제.공조판서, 1431년 중군도총제를 거쳐
1439년 우찬성.중추원사를 역임하고
좌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성억선생 묘소는
가로 4m, 세로 5m의 직사각형으로 호석을 두른 봉분과
봉분 앞 상석 아래에 향로석, 장명등과 한 쌍의 문인석을 세운
전형적인 여말선초의 묘제이고, 석물인데
묘비는 유실되어 근래에 봉분 우측에 세운 듯합니다
성억 선생의 묘를 둘러본 후
하산하려는데 길이 안 보여 잡목숲으로 내려와서 보니
돌계단으로 만든 오르막 진입로를
묘역 입구에 오래된 노송이
얼마 전에 첫눈으로 내린 폭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부러져며 막은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통일로에서
대양로를 거쳐 무민로에 설치한 묘소 안내판과
입구에 복제본으로 세운
성억선생의 신도비 복제본을 확인하고
통일로 필리핀참전비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며
목표한 10,000보를 걷기를 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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