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청주 한씨 문양공 한계미 선생 묘역

홀인원 2024. 12. 22. 15:05

2024년 12월 19일

 

오늘은 지인들과 점심 약속한 장소가

5.2Km 거리로 멀지 않은 거리이고

10,000보 목표도 달성할 겸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90분 전에 출발해

7,500보 넘게 걸어 2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일을 본 후

갔던 길로 다시 걸어오려 했으나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권유로 지인의 차로 집 근처까지 오게 되

부족한 걸음수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가까운 한계미선생 묘역으로 갔습니다

한계미선생 묘역

 

묘역 입구가 잠겨있음을 확인하고

사당을 지키는 종가 후손에게 연락하려다

입구 옆에 있는

진주 강 씨 통계공 강희중선생의 신도비와 재실을 발견해

살펴보다 재실 뒤 묘소까지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강회중선생 신도비
진주 강씨 통계공파 사당인 경덕재
경덕재 중건 기념비와 묘역 조성에 대한 내역

 

진주 강씨 통계공파 사당인

경덕재에 대한 사연과 안내문이 적힌 기념비를 살피고

경덕제 뒤 계단 위 산기슭으로 올라가

통계공 강회중선생의 묘소를 둘러봤습니다

강회중선생 묘소 올라가는 계단과 그 옆에 세운 기적비

 

강회중

고려 말(우왕) 조선 전기(세종)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주, 자는 중보, 호는 통계입니다

목은 이색 문하에서 수학하고

1382년(고려 우왕 8년) 진사 문과에 합격해

고려 말에 보문각 대제학을 지내고

1392년 태조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 초 병조판서를 거쳐

1418년(태종 18년) 경기도관찰사와 성부유후,

인수부윤을 역임하고

1419년 한성부윤과 공조참판, 충청도관찰사를 지냈고

1421년(세종 3년) 4월 4일 총제로 재직 중

사망했습니다

 

전처 의령 남 씨와 후처인 전주 최 씨 묘 등

축대를 쌓아 제절 공간을 인위적으로 조성하여

반월형으로 화강암 호석을 두른 봉분 3기를 횡으로 배치하고

봉분 앞에

높이 143Cm, 폭 51Cm, 두께 25Cm 묘비와

좌우에 망주석과 문인석을 세웠습니다

강회중 묘비와 좌우 부인들의 묘비

 

강회중 묘역 뒤로

'전교 청주한공 영수지묘'라고 묘비에 쓴 묘를 지나

 

숲길로 한계미선생 묘역으로 이동했습니다

한계미 묘역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에 위치한

"한계미 선생 묘와 신도비"는

1986년 6월 16일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었고

한계미 묘역 안내판

 

묘역 입구 오른쪽 비각안에

1471년(성종 2년)

긴 사각 모양의 비좌와 이수를 갖춰 세운

높이 230Cm, 폭 66Cm, 두께 21Cm 크기의

신도비가 있고

신도비 비문은 '한문양공묘명' 이라고

김수온이 지어 성임이 썼답니다

한계미 선생 신도비

 

한계미 선생(1412년~1471년)은

자는 공보, 본관은 청주, 시호는 문양인 조선 전기 문신으로

조선의 개국공신 한상경의 손자이고

함경도 관찰사 한 혜의 아들이며 세조비 정희왕후의 형부입니다

1438년 18세 나이에 음보로 충의위사용이 되고

부사직으로 감찰을 역임하였습니다

1452년 형조도관좌랑, 1455년 시복시제윤에 제수되고

1457년 우승지, 1458년 호조참판 및 가선대부에 임명되어

1463년 이조판서가 됩니다

1468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적개공신 3등에 책록 되며 우찬성에 올라 1469년 좌찬성과 이조판서를 겸하다

1471년 영중추부사가 되었습니다

한계미 묘소

 

정경부인 파평 윤 씨와 합장된 묘는

2단으로 단을 쌓고 화강암 재질의 호석으로 두른

둘레 28m, 높이 2m의 봉분 앞에

'우 서원부원군 한문양공 지묘

좌 정경부인 윤 씨 지묘'라 쓴

반달 모양에 꽃무늬로 장식한 묘비가 있고

묘비 앞에 상석, 향로석이 있으며

단 아래에 묘역에 불을 밝혀 사악한 기운을 쫒는다는 장명등과

좌, 우로 망주석과 문인석 한 쌍씩 있는데

장명등은 1품 이상 묘역에만 둘 수 있어

무덤 주인의 지위를 보여줍니다

봉분 앞 묘갈과 1972년 세운 묘비
한계미 묘 후경

 

한계미 묘역을 나와

좌측에 잘 조성된 산길로 100m 정도 올라가면

한계미선생의 아들인 공동공 한의선생 신도비가 있고

그 위로 한의선생 묘소가 있습니다

한계미선생 아들 공도공 한의 신도비
한계미선생 아들인 공도공 한의 묘소

 

공도공 한의 신도비와 묘소를 둘러보고

묘역에서 200여 m 아래에 있는

한계미 선생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인

문양사를 찾아 내려가다 입구 문이 잠겨있음이 문득 생각나

건자산 능선길로 돌아서 내려오며

예상보다 많은 15,000보 이상 걷게 되었습니다.

 

한계미선생묘 - 네이버 지도

 

네이버 지도

한계미선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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